싫증병

반성문 2019. 5. 10. 07:59

늘 그랬듯이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뭐 내 몸안에서 꾸준히 자라는지 물도 주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금세 자라고 눌러도 또 자라 고를 반복한다. 그래. 책 읽는 건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는 거, 이건 정말 초인적인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제 몸에 배일만도 한데 게으름이 자꾸 이불속으로 나를 당긴다. 역시 열성이 우성을 이기나 보다. 인간은 누구나 게으르다.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야 해서 일어나는 거다. 일찍 일어나는 모든 이를 부지런하다는 간단한 단어로 압축해서 말하지 말자. 그들의 의지를 그렇게 쉽게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 늦었지만 일어나기는 했고. 어제는 점점 더워지는데 차 에어컨이 말썽을 부려 시간 있을 때 고치기로 했다. 에어컨 가스 충전, 배선도 손보고, 엔진오일 갈고... 손대면 톡 하고 부서질 것 같은 올드 카라서 어르고 달래 가며 타고 있다. 카센터 사장님의 집이 근처인지 따님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워낙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지라 한번 만져 보려는데 외면한다. 우린 좋아한다는 표현인데 동물들이 싫어하는 행동들이 있다고 한다. 머리 쓰다듬는 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인데 동물들은 위협적인 행동으로 여기고 긴장한단다. 내 냄새를 맡게 하고 조심스레 턱밑을 쓰다듬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계속해서 외면하길래 성격이 원래 새침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센터 사장님이 강아지의 나이가 17살이라고 알려준다.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기고 했다고. 17살이라면 사람 나이로 친다면 80에서 90정도 되려나? 그래도 걷는 건 건강해 보였다. "17살이요? 그렇게 오래 키우셨으면 가족이나 다름없겠네요." 이 한마디로 사장님과 나 사이의 경계는 무너졌다.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올 때까지 나의 올드카를 세심히 살펴 주셨다. 예상보다 많이 나온 수리비가 좀 걸렸지만 좋은 관계 형성에 투자했다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딸들에게 줄 책을 샀다.  이진이 씨의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이 먼저예요' 어른인 척 이후에 나온 책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큰딸을 위해서. 김민식PD의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고3 둘째 딸을 위해 샀는데 일단 읽어 보고 부담 줄 것 같으면 주지 않으련다. 질풍노도의 시기라서. 두책의 후기는 다음에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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